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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일물(無一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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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40   2006.07.26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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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거주하는 암자에 불이 났다.줄곳 비워 놓았던 방으로 며칠간 쓰기 위해 아궁이에 불을 지나치게 많이 넣었던 탓이다.
방 하나가 온통 불바다가 된 것도 모르고 나는 옆방에서 한가롭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 마침 천장에 가설해 놓은 전구가 불길을 이기지 못해 펑하고 터지는 심상치 않은 소리에 비로소 불이 난 줄 알았다. 허둥지둥 불을 끄면서 나는 문득 진정 무서운 불은 내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 번뇌의 불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방안의 물건 중 유일하게 불길에 휩사여 타지 않았던 것이 있었다. 2년 전에 만들어 벽에 걸어 두었던 무일물이라는 편액이다. 본래 청정해서 한 물건도 없다는 뜻이다. 사나웠던 불길도 태울 수 없었던 것이 있다면 모든 생명이 온전히 지니고 있는 본래의 청정심이 아닐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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