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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반사(茶飯事)와 주반사(酒飯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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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1   2006.07.26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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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수년 전 어느 도공 거사님에게 들은 이야기다. 일제시 일본에서 그릇 굽는 작업을 하시다가 해방과 더불어 귀국해 산에 가마를 설치했지만 그릇이 팔리지 않아 꽃 담는 화분을 구워 생계를 유지 하였다. 한국에 와서 제일 그리운 것은 일본에서 물 마시듯 차를 마셨던 일들이었다. 조선천지 돌아보아도 차 한 잔 얻어 먹을 곳이 없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초라하게 생기신 노스님께서 오셔서 차 마시는 다관을 만들어 줄 것을 부탁 하셨다. 조선땅에도 차 마시는 사람이 있구나 싶어 온 정성을 기울여 다관을 만들었다. 약속한 날 노스님께서 오셔서 말씀하시기를 '다관을 만든 도공거사에게 제일 먼저 차 공양을 올려야 하겠다' 하시며 겉망 속에 문종이로 여러겹 싼 차를 푸는 것을 보는 순간 멀리간 부모 형제를 다시 만난 듯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아마 그날 도공은 그 달콤한 차를 마음껏 공양 받았을것이다.

우리는 500년 동안 차의 소중한 문화적 가치를 외면하고 살아 왔다. 조선 오백년 동안 많지 않는 스님들과, 스님들과 가까이 지냈던 선비 몇 분만 전 국민을 대표해서 차를 마신 셈이다.  필자는 중국 북경에 잠시 머문 적이 있었다. 중국인은 모여앉으면 차였고 조선족은 모여 앉으면 오직 술이였다. 중국인은 '다반사(茶飯事)', 조선족은 '주반사(酒飯事)' 인 셈이다.

다반사라는 말의 어원은 고려조에 들어서서, 차문화가 생활깊숙이 스며들어 하루의 여가를 차 마시는 즐거움으로 소일한 데서 나온 말이다. 그러나 조선이 시작되면서 차문화의 단절은 자연스럽게 주반사(酒飯事)로 이어진 셈이다.

아마 술좌석의 예절이 우리처럼 까다로운 민족도 드물 것이다. 그것은 필경 술 문화의 극대화로 인한 사회 저변의 윤리적 타락을 염려한 조선 지식인들의 대책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지니고 있었던 아름다운 풍습을 하루 아침에 던져 버리고 오직 술 마시는 일에만 힘써 온 이 땅의 주인들이다. 그래서 오늘날 세계 술 소비 대국이라는 업보를 받고 있으며 도심지 어느 곳에서나 술집이 지천으로 널려 있는 어이없는 모습을 하고 있다.

문화가 발달되어 있는 나라일수록 차문화도 발달되어 있다. 영국에는 오전과 오후 하루 두 번 티브레이크(tea break)가 있으며 전 국민이 일손을 놓고 차를 마신다. 어느 사회 어느 민족인들 차문화가 없겠는가만은 한국 일본 중국이 누리는 차문화는 아주 특별한 것이며 그 어떤 문화보다도 진보된 선진 문화인 것이다.

차문화는 항시 정신 문화와 깊은 관계를 맺게 마련이다. 삼국이 누리는 차문화는 세계 어떤 정신사에도 찾아보기 힘든 깊은 깨달음의 세계와 이어져 있다.

다선일미 (茶禪一味)
다선일여 (茶禪一如)
다삼매 (茶三昧)
끽다거 (喫茶去)

라는 말을 다인들은 즐겨 쏜다. 모두 여기에서 유래된 말이다. 우리 선인들은 차를 통해 오감(五感)의 신선함을 극대화시켜 몸과 마음을 닦는, 즉 수신의 도구로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 차문화는 몇 천 년의 긴 시간의 역사를 거쳐 오늘날 완벽하게 제도화된 풍요로운 차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한 잔의 차속에서 한국인의 긴 역사의 과정이 녹아있는 셈이다.

우리는 차문화의 실천을 통해서 한국인으로서의 본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는 것이며 더 쉽게 말하자면 차문화의 실천은 가장 완벽한 한국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우리 사회는 하루 빨리 주반사에서 다반사로 전환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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