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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 제비원 부처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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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74   2006.07.26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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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道)은 산과 산 사이로 끝없이 이어져 있다. 나즈막한 산모퉁이를 돌면 어김없이 마을이 나타나며 그 마을 지나면 시원스럽게 쏟아져 흐르는 개울물 옆으로 이어지는 산 길은 끝간곳 없이 아득해 질 무렵 또 다시 산 모퉁이를 돌면 하루 밤이라도 유숙해 보고 싶은 푸근한 마을이 나타난다.
우리 나라 산간지방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정서를 보며 즐기며 누리면서 완벽한 한국인이 된 느낌으로 올 수 있는 곳이바로 안동(安東) 땅이다.
이곳은 아직도 양반 정서가 남아 있다. 옛 적에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 조차도 양반 어른들의 갓끈을 적신다 하여 조심스럽게 내렸다는 곳이다.

안동 땅에 처음 아파트 붐이 일어나면서 건축업자들이 어이없는 곤란을 겪었던 것은 양반 동네의 뒷간 문화였다. 아파트에 설치해 놓은 좌변기는 며늘아이의 엉덩이 살이 스칠 곳이라 하여 시아버지 되는 이가 살을 붙이고 볼 일을 볼 수 없다는 양반 어른들의 항변에 아파트 입주 취소까지 이어져 업자들은 큰 곤란을 겪었다는 것이다.

필자가 이 곳에 머문지도 십년 가까운 세월이다. 다른 곳과 달리 번잡스럽지 않아 좋다. 이 곳은 많은 문화재가 산적해 있다. 신라, 고려땐 불교가 왕성했으며 이조땐 유교 문화가 번창했던 곳이다. 이 양반 동네의 문화재 중 백미는 영국 여왕할머니가 다녀간 하회마을이나 봉정사가 아닌 단연 이천동 석불(보물 115), 일명 제비원 부처님이다.

이 석불의 양식과 규모는 고려 시대의 대표적 석불이며 거대한 자연석 화강암 석벽에 12.8m에 달하는 신상(身像)을 새기고 그 위에 2.4m의 돌에 부처님 얼굴을 새겨 얹어 놓았다. 이 곳 노인 분들의 말에 의하면 이 불상은 6.25때까지 거대한 불두(佛頭)가 안타깝게 럭비공처럼 비스듬히 옆으로 누워있었다고 한다. 6.25때 마침 이곳을 지나던 미군들이 이 불상을 보고 크게 감탄하여 그 난리통에 수 십일동안 어렵사리 작업하여 부처님 머리 부분을 바로 세워 놓았다는 것이다.  유물이란 바라보고 있노라면 정말 솔직해서 좋다. 그 시대의 정서를 정직하게 담고 있는 것이다.

제비원 석불은 신라 불상에서 볼 수 있는 신라인의 정서 즉,이 땅의 정토(淨土)구현과 사후(死後) 미타정토를 꿈꾸는 숭고하며 번져 나오는 듯한 미소는 없다. 그러나 존재를 바로 보고 바로 인식하는 지적성찰을 통해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머무는 곳이 다 주인이 되며 서 있는 곳이 다 참됨이 된다.)의 고려 선불교(禪佛敎)적 정서가 잘 반영된 선악미추에 구애됨이 없는 의연한 미소를 담고 있다.
허나 이 잘 생긴 부처님은 우습게도 안동특산인 안동소주 상표(1920호)로 등록되어 소주집 얼굴 마담이 되고 말았다.

옛 스님의 글에 어떤 분이 사람과 우마차가 밟고 다니는 사거리의 흙으로 불상을 만들어 법당에 모셔 두었더니 모두들 참으로 부처님 대하듯 공손히 절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분은 그 불상을 부수어 다시 길바닥에 던져 놓았더니 사람들은 옛과 같이 무심히 밟고 다녔다고 한다.

우리는 이 글에서 불교의 무아론(武我論) 즉, 모든 존재는 고정된 절대적 실체가 없다는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 안동 제비원 부처님은 순수한 의식을 가진 불교인에겐 의연한 미소로 몸을 나투시고 드러내고 몽매한 중생들에겐 소주집 얼굴 마담으로 몸을 나투어 중생의 이익을 도모해 주는 무아론(武我論)의 진리 즉, 모든 존재의 존재 방식을 몸소 구현하여 보여 주시는 참으로 자비롭고 넉넉한 부처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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